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의 핵무장 (문단 편집) ==== 음모론 ==== 음모론 중에는 교통사고로 죽은 [[이휘소]] 박사는 암살이고, [[김재규]]가 [[10.26 사건]]을 일으킨 이유는 CIA와 모종의 연관이 있다는 설, 또는 10.26 사건이 없었다면 1981년 10월 1일 박정희가 [[국군의 날]] 기념식에서 국내외에 핵무기를 전격 공개하고 핵보유국 천명과 함께 스스로 퇴임하려 했다는 카더라도 있다.[* 80년대에 핵미사일을 공개하려 한 것은 사실이며 이미 한국은 프랑스의 기폭실험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기에 북한과 같은 수차례의 핵실험이 필요없었다. 역시 프랑스의 도움을 받아 핵실험을 [[벨라 사건|단 한번]] 밖에 하지 않은 이스라엘의 사례를 참고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이다. 그러나 박정희는 자신의 임기에 대해 여러번 번복했던 전례가 있기에 교차증언이 아무리 많이 나왔다 하더라도 퇴임을 염두에 뒀다는 것은 신뢰하기 어렵다.] [[김진명]]의 <[[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(소설)|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]]>나 공석하의 <핵물리학자 이휘소>와 같은 몇몇 소설에서도 심심찮게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. 아니, 애초에 이런 소설들이 음모론을 키운 원산지이기도 하다. 얼마나 시달렸으면 [[이휘소]] 박사의 유족들이 핵무기 타령 좀 그만하라고 고소까지 할 정도니. 자세한 내용은 [[이휘소]] 항목 참조.[* 김재규의 경우 순순히 처형된 점에서 음모론의 신뢰성은 떨어진다. 물론 김재규 개인이 미국이 뒤를 봐줄것이란 계산을 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겠지만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.] 여기에 2011년경 대한민국의 핵개발 비화를 다루는 또 한 편의 소설이 나오면서 200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에 '모자 씌우기'라는 이름으로 제2차 핵개발 및 핵실험이 있었다는 [[음모론]]도 대두했다.[* 1994년, 1995년에 한국방송대상을 수상했던 오동선 PD가 2000년대 초반 정부 고위 관료였던 X와, 핵 관계 과학자로 종사하던 Q에게서 오프 더 레코드를 조건으로 들은 증언을 구체화한 소설이 <모자 씌우기>이다. 물론 해당 증언은 작가의 말과 같은 말머리, 맺음말에서조차 공개되지 않았으며, 다만 Q가 당시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정확히 예견했다고 작가의 말에 수록.] 이 설에 따르면 박정희 정권 당시 멈췄던 핵 프로그램이 [[김대중]] 정권 당시 재개해 [[노무현]] 정권을 거쳐 [[이명박]] 정권에까지 인수인계되는 과정 속에서 우여곡절이 있었으며, 이 의혹의 증거로 위에서 언급했던 2004년 당시 IAEA의 한국 핵물질 사찰 파동의 진실과 2005년 [[동해]]상 미임계 실험 의혹, [[충청북도]] 모 지역에 위치한 의문의 광산 등을 내세우고 있다.[* [[대전광역시]]-[[금산군]]-[[옥천군]] 일대에 수만t 규모의 우라늄 광맥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며 과거 핵무장 시도 때부터 개발이 추진되어 왔다. 하지만 환경오염 문제에 채산성도 낮거니와 향후 해상 봉쇄 등의 장기화로 인해 우라늄 비축량이 다 바닥나는 사태를 대비해 [[http://m.joongdo.co.kr/view.php?key=20131119000003479|2011년 검토]] 이후로 실개발은 되고 있지 않다.] 어디까지나 [[진실은 저 너머에]]. 이에 대해 이른바 모자씌우기 실험 기자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, 이 레이저 재처리기가 러시아제가 아니라 한국에서 제조되었던 점(러시아 장비는 실험장비로 모자씌우기가 불가하다) 이 장비가 10년 만에 폐기를 주장한다는 점, 이 실험장비의 제작비와 연구비 출처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, 실험에 참가한 교수 이외의 인물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해당 실험실 인사는 그와 같은 시료의 존재 및 실험 자체를 모른다는 점이 한국의 핵무장 의심을 하게 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